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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르노빌의 봄 / 엠마뉘엘 르파주책 2015. 3. 28. 12:53
정말 오랜만에 읽어보는 만화책이다. 내가 평소에 아는 그 '만화책'이라는 어감과는 달리차분하고 차갑고 어두운, 그러나 '체르노빌'이라는 단어를 망각하는 시간 동안은 아름답기까지 한 작품이었다.
르파주는 건축학도이자 만화가이다. 그리고 프랑스 사람이다. 내가 그에 대해 아는 것은 그 뿐이다.
그는 반핵운동을 지지하고 있어서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심어줄 만한 그림, 만화책을 내기 위해 그의 파트너와 몇몇 듯이 통하는 예술가들과 함께 체르노빌을 직접 탐방하면서 그림을 그리게 된다.
그러니까, 수기를 만화책에 담았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 작품을 보는 내내 나는 어쩐지 현실과는 동떨어져서, 뭔가 벙 찐 느김이었다. 서울에 살고 있는 내가 현 시점에 이런 세계와 공존하고 있다는 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1970년에 건설된 프리피야티는 우크라이나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 불렸다. 도시 안에는 현대식 대형 건물이 즐비했다. 여러 공공시설도 갖춰져 있었다. ... 사고 이후 50만에서 80만의 처리반이 그 곳을 청소하고 파괴된 원자로를 봉쇄하기 위한 석관 건설에 동원 됐다. ... 모든 동물이 도살처분 되었다. 개, 고양이, 기금류, 가축, 야생동물, 모두가 ... 숲 전체를 밀어버려 빨갛게 물들었다고 했다. ... 트럭, 크레인, 트랙터, ... 오염에 노출된 차량, 헬리콥터 ... 오염에 노출된 장비는 모두 버려지고 매장당했다. 광활한 장비의 무덤. 인간 없는 22년, 그 빈자리를 동물들이 차지했고 늑대가 모여들었다 ...]
그의 그림들을 보면, 거대한 건물이 즐비해 있지만 사람이 없다. 흑백톤의 그림이 여러 구도에서 그 '없음'을, '있었던 것인데 있을 것 같은데 없음'을 보여준다. 처리반과 죽어간 소방수들을 위한 기념비가 세워져 있지만, 그걸 보러올 사람은 극히 드물다.
금지구역, 라돈에 노출되면 피부가 허물어지고 온몸에 물집이 잡히고, 기형아가 출산되고 장기가 녹을 수도 있다. 그래서 그의 일행은 두꺼운 부츠에 비닐을 씌우고, 위생장갑을 끼고, 마스크에 땅에 닿지 않기 위한 1회용 접이식 의자를 쓴다. 그럼에도 안심할 수 없는 장소에는 그들 같은 예술가가 아니면 버려진 물건들을 털어 팔아먹으려는 도둑들 밖에 오지 않는다.
죽으러 온게 아니라, 사는 이들에게 알리기 위해 온 것이기에, 시간당 라돈 함유량을 재며, 방사능 측정기의 틱, 틱 거리는 소리를 듣는다. 그 소리는 얼른 떠나라는 경고음이나, 후크 선장의 한 쪽 팔을 잘라먹은 악어 뱃속에서 나는 시계소리 같다. 후크선장에게는 포식자가, 죽음이 다가오는 소리처럼 들렸을 그런...
하지만 처리반의 가족이거나, 이곳의 주민인 사람들은 라돈의 함유량 따위는 무시한 채 살고있다. 르파주의 일행은 방사능이 들어 있을 그들의 음식을, 그들이 호의로 베푼 그 음식을 먹어야할지 고민한다.
재미있는 것은 르파주의 일행이 죽음에 대해 잠시 잊음으로 인해서 시작된다. 22년간 사람의 흔적이 없는 공간에는 나무와 풀들이 자라고 더 이상 인간의 공격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야생동물들이 '잘'살아가고 있다. 더군다나, 더이상 발전하지 않은 문명은 르파주 본인의 고향을 떠올리게 할 만큼, 알수없는 향수감을 느끼게 만든다.
르파주는 아이러니를 느낀다.
[오로지 측정기만이 "이곳은 오염되었으니 떠나시오!"라며 나를 종용한다. 하지만 이렇게 느껴지는 걸 어떻해! 나는 괴상하고 흉측한 나무와 검은 숲을 상상했다. 그래서 검은 파스텔과 어두운 목탄, 잉크를 준비했다. ... 그런데 찬란한 색상에 사로잡힌 것이다 ... 뭘? 아름다움을 그려? 어떻게 이곳이 아름다울 수 있지?]
[마르티노비치 다리. 범람한 하천이 주변의 버려진 밭까지 덮쳤다. 끝없이 펼쳐진 강렬한 풍경. 무거운 침묵, 개구리 울음소리만이 멀리서 들려온다. 사방에는 은방울 꽃과 미라벨이 흐드러졌다. 다리 위에는 경치를 즐기는 가족과 연인들이 있었다. ... 금지구역이 가장 가까운 곳에... 금지 구역까지는 걸어서 지척이었다. 사람들은 금지구역과 이토록 가까운 곳까지 무엇을 찾으러 온걸까? ... 분명한 건, 눈부시게 아름다운 풍경하나 때문에 이곳에 오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 눈부시게 아름답다고? 난 참사를 증언하기 위해 이곳에 온게 아니었는가 ... 나는 죽음의 위협을 각오하고 왔는데 느껴지는 건 빛나도록 살아있는 생명이다. '체르노빌은 아름답다'고 말해도 되는 걸까? 협회에서 내게 기대한 그림은 이런 게 아닌데!]
흑백으로 가득차 있던 그림이 '아름답다'라는 단어를 떠올린 순간 푸르고 노랗고 밝은 색채를 가지며 생기를 가지게 된다. 다시 죽음을 느낀 순간 세상은 흑백으로 돌아온다.
르파주는 우리에게도 저마다의 체르노빌을 가지고 있다고 설득한다. 금지, 금단의 구역, 닿기만 해도 보이지 않는 방사선이 내 몸 안에 잠복할 것 같은 그 두려운 공간이, 죽음의 공간이 있다고 말이다. 우리 안에 있는 소년은, 소녀는 ... 그곳에 가서, 어쩌면 느끼게 될 아이러니를(아름다움을) 알아야 어른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상처, 가지고 있는 말세기적 이미지, 아포칼립스적인 느낌, 그게 아름다울 수 있는 게 가능할까. 가능할 것 같다. 잘 모르겠다.
나는 방사선이든 정체모를 바이러스든, 좀비든 무엇이건 간에 종말적인 상황에 대한 알수 없는 애착이랄지, 취향을 가지고 있다. 인간이 없는 세계, 인간 다운 인간이 멸종된 세계. 절망 조차 없는 공허나 허무, 체념 같은 것이 서려 있는 무채색의 세계말이다.
왜 그럴까.
왜 그런 곳의 풍경을 자꾸 상상할까, 그런 세계관의 게임, 영화, 애니 등 작품을 찾을까 생각해봤지만 뾰족한 답은 나오지 않았다. 다만, 르파주의 색채 없는 그림에 파랑,노랑,초록, 빛이 들고 색깔을 가지게 되는 것을 보고 이렇지 않을까? 정도의 짐작은 하게 되었다.
어느 일순간이 더욱 아름답게 보일 것 같아서, 그런 순간을 바라기에 더욱 짙은, 어두운 세계관을 찾는 게 아닐까. 그런 세계관의 작품에도 일말의 아름다운 색채는 허락되었으니까.
확대해석을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삶이라는 것도 역시 무채색의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 한 순간의 채색된 세계를 만나기 위해서는 아닐런지.
어느 소설에서 읽은 구절중에 이런 문장이 있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는 어쩌면, 주말 저녁에 가족들과 외식하는 시간을 위해서 인지도 모른다고. 당신이 상사에게 채이거나, 몸이 부서지거나 녹을만큼 힘든 것은, 어쩌면 그 몇시간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닐까. 뭐, 비슷한 문장이었다.
+a : 선진국들은 원자력 발전소를 줄이는 추세인데 한국만 원자력이 싸다며 발전소를 늘이고 있다고 한다. 싸다고 하는 이유에는 원자재 값 대비 전기 생산량만으로 따져서 그런건데, 기본 기백년은 방사능이 사라지지 않는 폐기물의 처리비용을 감안하고, 생산하는데 드는 에너지 비용을 더하면 결코 싼 값이 아니라고 들었다. 왜 한국만 늘이고 있는 것일까. 걱정된다. 분명 뒤에서 재미보는 인간들이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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