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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케르크 / 크리스토퍼 놀란뭔가 리뷰 2018. 11. 7. 01:53
솔직히, 영화의 메시지가 명확해서 내가 첨언할 말이 없다. 이 영화는 '생존'에 관한 영화다. 동시에 희망에 관한 영화며, 살아있는 이들에 대한 영화다. '생존이 승리다' 이보다 적확하게 영화의 메시지를 함축할 문장은 없어보인다.
영화는 해안에서의 일주일, 바다에서의 하루, 하늘에서의 1시간을 다루고 있다. 그곳에서 생존한 이들이 전쟁을 보는 시점을 병렬적으로 보여주면서, 결국에 하나의 시퀀스로 묶이게 된다. 감독이 세 가지 시점을 선택한 이유 중 하나는 아마 사실감이었을 것이다. 사실감, 이라기보다는 실제감, 그보다는 현실이라는 단어가 알맞을 것 같다.
현실. 영화를 보는 관객은 어쩔 수 없이 스크린 안에서 영화를 봐야만 한다. 대개 하나의 주인물과 배경을 쫓아가는 이야기는 그 시점에서 정보를 받아들이고 감정을 공유할 수밖에 없다. 이는 관객이 주인물에게 몰입하고 이야기의 감정선을 공감하거나 혹은 의심하면서 이야기에 대한 흡입력을 높이게 된다. 하지만 일방적인 측면밖에 받아들이지 못하기에, 관객은 인물에 대한 비판능력을 상실할 확률이 높다.
놀란 감독인 이 영화가 '전쟁영화'가 아닌 '생존 드라마'라고 했다. 전쟁영화에는 보통 전쟁을 승리로 이끌 거나 조국을 위해 희생한 주인공이 나온다. 흔히 말하는 영웅이다. 그에 비해 생존 드라마는 현실성을 담보한다. 현실성을 담보하지 않는다면 생존에 대한 어떠한 고찰도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장중한 음악이 나오고, 처참하게 부상당한 장면이 고스란히 나오고, 울고 고함을 지르고 광기에 젖어가면서 강렬한 감정으로 이야기를 끌고나가는 이야기는, 관객을 쉽게 속일 수 있다. 이들의 목적을 위해서, 이들의 숭고한 임무 혹은, 이들이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서 이들은 이토록 헌신적이고 절절하며 죽음도 불사한다. 이러한 인식이 들 때, 그들 중 하나가 고통스러워하며 죽어가는 모습은 관객들에게 '생명'이라던가 전쟁의 현실성 따위의 문제보다는, 그 인물의 고통과 절절함으로 인해 파생되는 관객의 감정(울음, 가슴 뜨거움, 열정 따위)을 만끽하는데 이용된다. 일종의 돈을 주고 영화를 보기에 소비되는 강렬한 감정들이다.
육, 공, 해의 세 가지 시점을 도입한 감독의 의도는 관객에게 다른 것을 원한다는 뜻이 될 것이다. 선율이 있는 음악 따위는 존재하지 않고, 심장 박동인지 총소리인지, 발걸음 소리인지 모를 음악이 깔리면서 긴장된 분위기를 이어나간다. 몰입하지 마라, 그저 목도해라. 그들이 어떻게 죽는지, 어떻게 살아남는지를 말이다. 이 과정을 거친 끝에 이어진 그들의 삶이 어떤 가치를 지닐지 생각해보라. 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에는 영웅이 없다. 물론 수뢰제거선에서 잠긴 문을 열고 여러 영국군을 구했던 프랑스인이나, 적군의 포로가 될 걸 알면서도 아군을 지키기 위해 싸운 파일럿, 군사들의 구출을 위해 애쓰고 마지막에는 프랑스군을 위해 남겠다는 사령관. 영웅적인 면모를 가진 인물들은 있었으나 이는 각각의 병렬적인 구조와 살아남기 위해 어선에서 아귀다툼을 벌이거나, 살아남기 위해 탈출하고 도망치고 비겁해졌던 병사들에 의해 희석된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34만명의 병사들(1200여명의 엑스트라들)이었고, 카메라에 얼굴이 클로즈업 된 유명 배우들은 감독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피사체였다.
나는 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를 내 기준에서 해석했다. 어찌보면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사회는 전쟁터나 다름없다. 마치 전쟁터에 나가 공훈을 세워야만 살아남을 가치가 있다는 듯한 기준처럼, 우리는 어떤 가치있는 존재가 되어야만 한다는 강박과 강요에 압박받으면서 살아가고 있다. 이로인한 좌절으로 오히려 목숨을 던지는 이들도 많다. 20대의 사망이유 1위가 자살인 시대다. 적기의 공습소리에, 어디서 날아올지 모르는 총탄에 끊임없이 공포에 떠는 것과 사실 크게 다르지 않다.
이대로 여기 있다가 비참해져버리는 게 아닐까, 사회적으로 죽임을 당하는 게 아닐까? 라고 말이다. 조국은 바다 건너 눈닿을 곳에 있는데 도저히 닿을 희망이 보이지 않고, 눈 앞에 생존을 위해서 서로를 총탄이 빗발치는 어선밖으로 내모는 모습, 기약없이 기다리는 구조선. 남의 일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이것은 실화이고 영화처럼 338,226명의 병사들은 철수를 성공했다. 비록 그들이 적에게 강력한 타격을 주지는 못했고, 그로 인해 누군가에게는 비아냥을 듣고, 병사로서 수치심을 느낄지언정, 그들이 살아남았기에 연합군은 4년간의 독일과 싸움에서 버틸 수 있었고, 노르망디 상륙작전까지 감행할 수 있었다.
생존이 승리다. 살아남고 버티는 사람이 승리다. 라고, 막연히 생각해본다. 일단 살아남으면 언젠가는 반격의 날이 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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