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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라랜드 / 데이미언 셔젤데뭔가 리뷰 2018. 11. 7. 01:50
결말이 주는 씁쓸함 역시 여운이 컸지만, 역시나 가장 큰 인상은 미아(엠마 스톤)이 부른 'The fools who dream'이다.
And here's to the fools
who dream
Crazy, as they may seem
Here's to the hearts that break
Here's to the mess we make그리고 여기 꿈을 꾸는 바보들을 위하여
아마도 그들이 미친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죠
여기 이 바보들의 부서진 마음을 위하여
여기 우리가 망친 것들을 위하여
이 부분에서 울컥했고, 이 부분의 멜로디나 가사가 계속 머릿속에 맴돈다. 이 영화는 예술가들을 위한 영화이다. 자기 속에 있는 무언가를 표현하기 위해, 그리고 그것을 표현했을 때 받게 될 주목과 찬사와 평가들을 위해 고민하고, 실패하고, 절망하고, 하루하루 조금씩 빛을 잃어가는 이들을 위한 영화이다.
리뷰를 하는데 내 취향을 밝히는 게 그리 가치있는 일은 아니겠지만, 이런 류의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뻔하다 싶다. 플롯은 정해져있기 때문이다. 초반에 세바스찬과 미아가 만나고 할리우드의 이상적인 풍경을 뮤지컬 형태로 보여줄 때도 나는 그다지 감흥이 없었다. 오히려 어색해보였고, 기시감이 들었다. 이전에 많은 영화들이 이미 해왔던 작업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영화가 할리우드의 빛에 대해서, 혹은 저물어감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할리우드라는 장소 자체가 이미 여러 영화에서 쓰인 세트장이자, 영화과에서는 수도 없이 등장한 문화유적 같은 곳이다. 일종의 국사를 연구하시는 분들에게 '경복궁' 같은 느낌이라고 설명하면 되려나. 때문에 도입부는 내게 너무나도 지루했다. 화려한 카메라 워킹과 세심한 편집, 보정, 춤과 노래를 위한 배우들의 연습 등이 엿보였지만 내가 보고 싶은 것은 애초부터 정해져있었다.
이전 위플래쉬에서 보여주었던 그 절박함과 고통과, 잔인함과 차가운 열정. 플렛처는 자기만의 철학을 가지고 사람을 죽이는 사이코패스 살인마 같았고, 앤드류는 그런 사이코패스를 동경하거나 혹은 뛰어넘어서고 싶어하는 소시오패스 같았다. '같았다'라는 것이지 '였다'고 정의하는 것은 아니다. 그만큼, 그들이 가지는 강렬함이 있었기에 그들의 인상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다미엔 차첼레 감독이 가지는 그 시선을 다시 한 번 느끼보고 싶었다. 그래서 본 것이었다. 물론 이번에는 보다 부드럽고 유연하고, 대중적이었지만, 여전히 그 시선은 살아있었다. 단지 플레처를 연기했던 시몬스가 레스토랑 사장으로 등장해서는 아니었다. 직업적 치열함에 집중하기 보다는 꿈과 현실의 괴리에서 오는 고단함, 지난함을 보여주었지만 여전히 그들은 몰두하고 있었다.
미아와 세바스찬의 사랑은 그래서 힘든 거였다. 예술과 다른 직업의 차이점은 여기에 있다. 다른 직업에서 작업은 무생물 같지만, 예술에서 서의 작업은 그 업적이나 작품은 살아있는 생명체와 같다. 어쩌면 아주 매혹적인 이성과도 닮아있다. 그래서 그 매력적인 대상과 사랑에 빠지려면, 혹은 빠지고나면 다른 사랑을 안을 품이 없다. 그래서 대개의 거장들의 연애사나 가정사는 그리 순탄치 못했다. 미아가 결국 세바스찬과의 결별 이후 예술을 하지 않는 다른 남성과 결혼하고 이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은 어쩌면 그런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이 매혹적인 예술이라는 대상과 사랑에 빠지고 나면 바보가 되어버린다. 'The fools who dream'에서 등장하는 이모처럼 차가운 물에 빠져 감기에 걸려도 또 다시 거기에 뛰어들 수밖에 없고, 제 정신으로 살기 힘들어 술을 곁에 둘 수 밖에 없고, 가슴 아파 할 수 밖에 없고, 발이 땅 보다는 하늘에 붕 뜬 것 같고 모든 게 엉망이 되어버려도, 계속할 수 밖에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다. 그건 예술에 대한 열정이기도 하지만 '사랑'에 대한 구체적인 정의이자 의미이기도 하다.
그런 '사랑'을 하는 예술가들을 위한 영화가 이 영화다. 이전 작 '위플래시'에 비해 이 작품이 수용범위가 넓어진 것을 느낀 부분이 이것이었다. 위플래시에서 예술가들의 광적인 부분, 집착, 집념, 비정상적인 부분을 집중적으로 조명하였다면 여기서는 그 근간을 이루는 '사랑'을 보여준다. 그런 사랑을 하는 예술가들, 그런 사랑에 빠져있거나 빠지고 싶다면, 이미 예술가이고 예술가를 지망하는 것이다.
즉, 할리우드에서 살고 있는 배우와 재즈 피아니스트의 이야기이지만 그들이 빠져 있는 사랑은 우리의 이야기다. 우리 역시 속에 무언가를 표현하고 싶어하고 그 표현으로 인한 반응에 민감하고 그에 따라 절망하고, 실패감을 맛보고, 그러다 어쩌다 한 번쯤 성공도 해보고, 그러다 그러다 조금씩 생기를 생명을 잃어가는, 빛을 잃어가는 삶이다. 이미 삶을 살아가는 순간 예술가로서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메시지는 단순하다. 아무 것도 잃지 않고 살아갈 수는 없겠지만, 사랑을 시작했다면 그것을 유지해라. 는 것이다. 세바스찬이 미아를 보고 마지막으로 했던 공상처럼, 그때 우리가 계속 사랑했었다면, 서로를 포기하지 않고 예술을 포기하지도 않았었다면 우리는 이렇게 살았을텐데. 연주가 끝나고 박수갈채가 쏟아진 후, 웅성거림과 침묵으로 남을 어느 인생의 마지막 단락에서 그런 공상을 하기 전에, 최선을 다해 스스로가 택한 사랑을 유지하라는 것이다.
* 유독 이 작품은 네이버에서 평론가들의 평이 높았다. 예술가들을 위한 영화, 예술가가 되려고 했던 이들을 위한 영화이기에, 무엇보다 평론가들의 마음과 환상을 시원하게 긁어주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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