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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아나
    뭔가 리뷰 2018. 11. 7. 01:48



    모아나는 끊임없이 자신이 누구인지 묻는다. 그녀의 아버지는 절대 암초밖으로 나가서는 안 된다고 단단히 일러둔다. 하지만 그녀는 계속 바다로 나가고 싶어한다. 그런 그녀를 인정하는 것은 할머니 뿐이다. 할머니는 그녀가 무엇을 원하는지 누구인지 알고 있다. 그래서 그녀에게 조상들의 항해를 알려주고 어째서 바다에 나가지 않게 된 것인지 알려준다.


    모아나가 조상들의 배를 모아둔 동굴에 들어갔을 때, 어쩐지 그녀의 모습이 익숙했다. 모래 위에 서 있는 한 척 한 척의 배들을 보며 기대 가득한 모습이 지식을 추구하고 어디론가 나아가려고 하는 사람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이 영화는 인간 역사와 미래의 근간으로 한 궤를 같이 하고 있다. 

    그건 개척과 정체성이다. 


    우리는 다들 저마다의 분야에서 배를 타고 항해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항해하는 것 보다는 여기 이 뭍 위에 발을 딛고 있는 것을 안전하게 여긴다. 공무원에 대한 혜택이 상당히 줄어들었고, 수명은 늘어남에도 불구하고 해가 거듭할 수록 올라가는 경쟁률이 그렇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찾아 나서는 그 항해가 우리를 삼키고 바다 깊은 곳으로 수장시켜버릴까봐 두렵다. 바닷속에는 무엇이 있는지도 알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모아나가 그러했듯 조상들의 지혜를 빌린다. 철학적인 용어로 치자면 거인들. 철학의 분야에 있어서는 아직도 고전으로 다루어지고 있는 헤겔이나 칸트나 흄이나 니체나 로크나 등등이 그렇다. 내가 원하는 항로에 이미 지나간 사람들은 어떤 인생을 살았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 엿본다. 그러니 모아나의 그 모습이 어떻게 낯설 수가 있었을까.


    모아나의 항해는 시작부터 끝까지 장애와  해결, 개척, 그리고 정체성을 찾는 과정의 연속이다. '나'는 무엇을 바라는가, 그것을 선택하는 것이 옳은가, 현재 역할에서 책임을 외면하고 있지는 않는가, 내 욕망으로 누군가가 상처를 입는 것은 아닌가, 애초에 '나'가 바라는 것이 가능하기는 한 것인가? 그건 누구나에게 공통적으로 해당하는 내적인 갈등이다. 그리고 그러한 내적 갈등을 효과적으로 그리는 것은 파괴력을 지닌다. 동화나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 자체는 어린이를 위한다는 통념이 있지만 그것이 가지고 있는 인생에 대한 통찰이나 교훈은 혼란스러운 세상을 살아가는 성인들에게 더욱더 필요한 듯 싶다. 무엇도 포기할 수 없고 포기하기 싫은데 포기해야하고, 원하는 것을 하려면 때때로 더 큰 것을 포기해야 하는 현실에서 우리의 등을 살작 떠밀어줄 누군가의 힘이 필요하다. 픽사는 그런 힘을 가진 이야기를 만들 줄 안다. 디즈니와 픽사의 스토리텔링 팀이 허투로 설정을 선택하지는 않는다. 언제나 가장 보편적이고 근원적인 인간의 내면을 이야기로 다루어 왔다. 피가 튀고 비참함과 고통에 가득찬 것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지 않아도, 그들은 인생의 어떤 것들을 보다 더 효과적으로 전달 할 줄 안다. 


    모아나가 항해하고 개척하며 정체성을 찾아가는 인간의 정신이라면, 마우이는 인간이 지니고 있는 기술과 그로 인한 물질적인 부분들이다. 불을 가져오고 인류에게 위협이 되는 괴물을 없애버리고 인간에게 적합한 먹을 것을 찾고 만들고, 항해술에 능하고, 무엇으로든 변신할 수 있고 심지어 인간으로서 건드려서는 안 되는 금단의 영역까지 건드린다. 물론 그는 반신이다. 그러나 그의 정체성은 역시나 인간이다. 그는 인간보다 분명 탁월한 육체적 능력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를 반신으로 만들어 주는 것은 갈고리다. 인류에게 있어 과학, 기술이다. 


    우리는 이렇듯 정신과 기술적인 영역 두 가지를 가지고 여전히 개척할 것이 많은 미지의 영역을, 인류의 영원한 평화와 안녕, 어쩌면 영생이나 인간을 초월한 어떤 영역을 찾아 계속해서 항해 해나가고 있다. 테피티의 심장은 인류가 말하는 마지막 목표지점인 것은 당연하다. 언제나 유에서 유를 창조할 수밖에 없는 유한한 인간의 존재가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을 얻는 것은, 과학기술의 마지막 단계이자 철학적 물음, 존재의 근원과 의미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는 '진리'에 가까운 것이다. 하지만 그 진리가 과연 우리가 바라는 것을 가져다줄지는 확실하지 않다. 언제나 발전에는 불확실성이 뒤따르며 그것이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것인지도 역시 불확실하다. 이것은 보편적인 사람들의 과제이다. 


    물론, 이렇게 재미없고 고리타분하게 접근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이건 어디까지나 필자의 주관적인 의견일 뿐 딱히 동의를 강요하는 것도 아니다. 과대해석이라는 비판이나 거대론적인 접근이라는 비판도 맞는 말이다. 


    다만, 이 훌륭한 스토리텔링에 대해서 근거없는 비난을 제시하는 이들에게 개인적인(옹호하는) 입장을 피력하고 싶을 뿐이다. 이 영화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 중에는 마냥 호의적이지만은 않은 부분들이 있다. 올라프를 헤이헤이로 치환하고 몇몇 캐릭터들의 외관만 바뀌고 약간의 컨셉적인 변화가 있었을 뿐, 우려먹기에 가깝다는 평들도 있었다. 물론 그들의 평가가 전적으로 틀리다거나 정면으로 반박할 생각은 없다. 그건 픽사와 디즈니에 대한 우리의 기대가 너무 크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우리가 진부하다고 생각하는 그 요소들을 모두 덜어내면 우리는 스토리를 따라가거나 적응하기 힘들어진다. 이해 자체가 안 될지도 모른다. 픽사의 클리셰를 덜어내면 픽사가 아니게 된다. 우리가 그토록 찾는 참신함과 낯선 시각을 주로 삼은 장르는 '예술영화'라고 일컫는 작품들이다. 대체로 인간의 실존이라던가, 어떤 부조리에 대해서 다루는 영화들이다. 그들이 그 장르에 대해 마냥 흥미로워할 수 있을지, 그토록 혹평하는 클리셰가 주는 효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지 되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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