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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과 여 / 이윤기
    뭔가 리뷰 2018. 11. 7. 01:44



    극장에 같이 걸려있던 <데드풀>과 고민하던 차에 결국 이 영화를 선택했다후회가 들지는 않는다그렇다고 큰 감흥이 느껴지는 것도 아니다그냥 딱내가 생각한 영화였다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여운이 남는 영화영화를 보고 극장에서 나올 때 이런 느낌을 느낀 것은 오랜만이었다.

     

    남녀 주인공은 각자 가정이 있다공유가 연기한 '기홍'은 성공한 건축설계사이지만 철없는(아직 어린아내와 마음의 문을 닫은 어린 딸이 있다전도연이 연기한 '상민'은 패션 디자이너고 정신과 의사인 남편을 두었으며지적 장애가 있는 아이를 아들로 두고 있다둘 다 사는 게 버겁다분명 나름대로의 최선을 다하며 살아왔고나름의 성공을 거머쥐었고 남들이 보기엔 나쁘지 않은 삶인데 둘은 어딘가 위태로우며 불완전하다기홍에겐 아내가상민에겐 아들이 그 이유다하지만 그것만을 이유로 삼을 수는 없다.

     

    젊다고하기에는 이미 누군가를 책임져야 하는 어른이다어른이라 하기에는 아직 치기어린 욕망이 사그라들지 않았다둘 다 경계에 서 있는 사람들기홍은 아내 때문에 점점 지쳐가고 있지만동시에 아내를 위해 살고 아내가 삶의 추진력이 되어주던 때가 있었을 것이다상민 역시 아들이 그녀를 초췌하게 만들지만장애를 가진 아들이 세상에 내버려지는 것을 막는 것이 그녀가 사는 이유이기도 하다그렇기에 둘은 애매하다가족에게 온전한 자신은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아버지이거나 어머니혹은 아내혹은 남편이다그렇다고 모든 걸 내팽겨치고 자기 자신이 되어 서로를 사랑할 수도 없다누군가의 아버지이거나 어머니혹은 아내혹은 남편이기 때문이다그래서 이 영화에 깊이 빠져들면 불륜보다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애초에 불륜에 방점을 찍은 영화가 아니기 때문이다정체성남자나 여자나 살아가다보면 어쩔수 없이 걸어야하는 정해진 길자기 자신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든다.

     

    대학교에서 강의를 들을 때한 교수님이 말씀하셨던 게 기억에 남는다사랑이 범위가 큰 지불륜이 범위가 큰지에 대해서 말이다대부분의 사람들이 사랑이라는 범위를 매우 광범위 하다고 오인하고 있는데사실은 불륜보다도 협소한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 교수님의 논지였다사랑에는 금기가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인종성별계층학력재력나이 등사랑은 강력한 힘이고 많은 경계선을 뛰어 넘는다고 믿고 있다그렇다면 불륜보다 사랑은 확실히 범위가 넓다불륜은 엄연히 금기를 건드리고 있기 때문이다그런데 사랑이 훨씬더 범위가 넓음에도 어째서 하위개념에 속하는 불륜은 금기인가?

     

    사실상 우리가 이데올로기로 착각하고 있어서 그렇지불륜의 범위가 사랑보다 큰 것이 아닐까사랑의 정의란 무엇인가불륜과 사랑의 차이는 무엇인가사실 편의에 따라 경계를 넘으며 멋대로 기준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닐까. <포스마쥬어>라는 영화를 보았을 때도 느꼈지만 '가족'이라는 범주가 지니고 있는 강력한 속박력은 뒤집어보면 아무것도 아닐 때도 있다여기서 '가족'이라는 범주를 건드린 것은 특별히 '가족의 의미'를 해체시키거나 비하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가족'에 대한 강력한 속박의식만큼이나 익숙한 사회 제도와 규범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상식의 선에 대한 회의감이다사랑에 금기가 있는 것은 이러한 '상식때문이다영화를 보면서 '기홍'과 '상민'의 살이 섞일 때 관객이 느끼는 애틋함도 불안감도어쩌다 여기까지 온 걸까 하는 슬픔이나 안타까움도 모두 이 '상식'이 존재하기 때문이다그들이 '금기의 사랑'을 하고 있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감정들이다영화는 그 부분을 건드리고 있다.

     

    상식을 회의하고 나면 뭐가 남을까그건 다시 자기 자신의 의미에 대한 물음이다가족이기에남편이라서아내라서아들이라서딸이라서 희생하거나 당연시 받았던 것들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들고 그들과 자신 간의 관계, ''의 의미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된다핀란드의 눈은 '상식'의 경계를 잠시 가리는 역할을 한다눈이 내리고눈이 쌓이고그 밑에 꽁꽁 언 강이 있는지 뭐가 있는지 알면서도 그 순간만큼은 다 괜찮고 허용하는 시간눈보라가 친 후 기홍과 상민의 관계가 시작된 것도 그 때문이다. '상식 선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아등바등 살아오다가 문득 눈보라가 치는 시간눈이 쌓인 시간역할에 대한 경계는 사라지고당연시 되던 것들에 대해 의구심이 드는 시간당연한 것들을 모두 잊어버리고 싶을 때 말이다.

     

    흔히들 하는 말로 타인은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다그렇기에 지금의 ''가 실증나고 지칠 때나는 '지금의 나'를 떠나기 위해 익숙한 타인들을 떠나는 것이다그리고 내가 바라던 ''를 비추어줄 타인을 찾는다그게 일탈여행일 수도불륜일 수도누군가에게 해를 끼치는 범죄일 수도 있다그렇게 ''는 '지친 나'를 벗어나려는 것이다그게 상민에게 기홍이었고 기홍에겐 상민이었다.

     

    이 영화가 지닌 강점이란 담담함에 있다. 이 담담함이란 어쩌면 성숙함을 내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보통의 불륜을 다루는 영화라면 가족사 전체로 이야기를 확대시킨다. 불륜이 가정에 어떤 영향을 미쳤으며 이로인해 아이들의 삶이 망가진다거나 장인댁과 시댁간의 갈등이 일어난다거나 법정 소환이 난무하고 끝내는 이혼이나 죽음으로 귀결되는 파국. 굳이 자극적인 전개를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결국에는 비극이 예정된 이야기가 불륜이라는 소재다. 그런데 이 영화는 '상민'이 남편에게 "나 그 사람 없이는 못살아"라고 한 마디 고백한 것 외에는 가족들의 반응을 장면으로 담지 않는다. 영화는 시종일관 잔잔하게 흘러간다. 폭행도 욕설도 고함도 비명도 없이 말이다. 이러한 절제는 상민과 기홍의 전반에 흐르고 있는 피로와 회의감, 인생의 무엇(무게)을 알아버린 사람들의 분위기를 형성한다. 동시에 여백을 만들어 관객 스스로가 인물에게 자신을 투영하거나 그 심리를 추정할 자리를 마련한다. 때문에 모든 걸 말로 내뱉는 드라마 문법에 익숙하거나 이런 부분들에 대해서 생각해보지 않은 이들, 특히나 어린 관객들(굳이 나이가 아니더라도)에게는 따분한 영화가 될 확률이 높다. 반대로 두 인물의 감정선에 몰입할 준비가 된 관객들이라면 핀란드 혹은 일탈을 향한 짧은 여행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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