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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광이 피에로 / 장 뤽 고다르뭔가 리뷰 2018. 11. 7. 01:35
1950년대 프랑스는 할리우드의 강력한 영향력으로 인해 입지가 많이 위축된 상태였다. 트뤼포는 이에 대해 <카이에 뒤 시네마>라는 영화 전문지에 ‘프랑스 영화의 어떤 영향’이라는 글을 싣는다. 그 내용은 대략적으로 다음과 같다. ‘현재 프랑스 영화는 문학작품을 바탕으로 한 시나리오를 영화감독이 그저 화면에 옮기는 데 급급했을 뿐이며, 프랑스 영화는 영화제에서 상을 받기위한 영화로 전락했다.’ 이와 같이 말하면서 트뤼포는 영화란 ‘감독 개인의 영감과 통제력의 산물이 되어야 하며 단순히 시나리오를 이미지로 옮기는데 그쳐서는 안 된다’라고 주장했다. 이 같은 주장은 트뤼포 스스로가 사용한 ‘작가주의’라는 단어로 함축되었다. 즉,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감독의 역량이자 개성과 통찰, 영감이라는 말로써, ‘감독의 개성이 잘 드러난 영화’를 강조하는 말이었다.
트뤼포의 주장을 중심으로 프랑스 영화계에는 변화가 불어 닥친다. 상업적으로 성공한 영화감독들은 저평가 되고, 고루하고 한 물간 감독으로 평가 되던 장 르느와르나 막스 오퓔스, 로베르 브레송 등은 ‘작가주의’의 진정한 감독으로 거듭난다. 이와 함께 젊은 영화감독들이 신선한 발상과 표현 양식을 제시하고, 기성영화를 비판하면서 새로운 풍조를 일으키는데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의 영향을 많이 받은 이 풍조는 ‘새로운 물결’이라는 뜻의 프랑스어로 ‘누벨바그’라고 지칭했고, 좀더 좁은 의미로 말하자면 영화 평론지 <카예 뒤 시네마>를 주축으로 활동했던 신예 비평가들의 영화제작을 뜻한다. 이 사조에는 프랑수아 트뤼포, 장 뤽 고다르, 클로브 샤브롤, 지크 리베트, 에릭 로메르, 루이 말, 로줴 바딩 등이 참여했다.
영화제작에 참여했던 젊은 영화감독들은 각자의 개성강한 스타일로 영화를 만들었고, 이 때문에 누벨바그는 어떤 특정한 영화 양식을 말하는 것이 아닌 기성영화의 형식을 부인하는 것에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편집기법 상의 변화였는데, 할리우드 고전주의의 이른바 ‘비가시성 편집’의 규칙을 철저히 부수는 데 있었다. 이를테면 장 뤽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1959)’에서는 점프 컷이 비일비재하게 사용되었으며 그로 인해 비약과 생략이 생겨나고 작품은 속도감을 가졌다. 또한 화면은 불연속성을 가지면서 관객들이 영화와 거리를 두게 만들었고, 배우가 화면을 직접보고 관객에게 말을 거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면서 ‘이것이 영화다’라는 것을 끊임없이 상기시켰다. 게다가 이러한 연출 방식에 더불어, 미리 시나리오를 완성하지 않고 촬영 직전에 대사를 만들고 배우들에게 즉흥 대사를 일러줌으로써 이전까지 기성영화가 가지던 대부분의 특징들을 배제하거나 부인하는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트뤼포의 시놉시스를 각색하여 고다르가 29세에 만든 ‘네 멋대로 해라’는 감독 자신의 개성과 실험정신, 그리고 그 만의 영상미로 1960년 베를린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하였고, 이때부터 사실상 고다르는 누벨바그의 상징적인 인물로 부상했다.
장 뤽 고다르는 영화 역사상 최고의 혁명가로 평가 받기도 하는데, 그 이유는 기성영화를 전복시킨 것으로도 모자라, 매번 영화를 제작 할 때마다 자신의 전 작품의 문법을 버리고 새로운 스타일을 찾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고다르 스타일이란 스타일이 없는 것’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한 편으로 너무 난해하다는 평가를 듣기도 하며, ‘네멋대로 해라’를 통해 상을 받았을 때는 철부지 영화평론가의 장난이라는 혹평을 듣기도 했다. 고다르는 영화란 단순히 현실을 재구성하거나 이야기를 표현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닌 영상, 음향, 편집 기법이 어우러진 독립적인 예술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1965년 발표된 ‘미치광이 피에로’는 감독과 두 주연배우가 정점인 상태에서 촬영한 영화였다. 고다르는 이미 누벨바그의 상징으로 자리매김 한 상태였고, 장 폴 벨몽도는 조각같은 미남의 알랭 들롱의 라이벌이며 그가 가지지 않은 매력을 소유하여 60년대 영화를 양분할 정도로 인기 있는 배우였고, 안나 카리나는 1961년 베를린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상태였다.
영화는 페르디낭과 마리안느의 행보를 따라가는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굳이 줄거리를 요약하자면 일상에 환멸을 느낀 두 남녀가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다. 사실 이야기 구조상 논리적인 구석은 찾아보기 힘들고, 영화 전반을 이끌어나가는 사건에도 인과성이 촘촘하지 않다. 누벨바그의 구조적 특징인 몰개연성으로, 인물들은 어디로 튈지 모르며 그들을 하나의 캐릭성을 가진 인물로 정의하기 힘들게 만들고 그 때문에 앞으로 어떤 행동을 하고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도 예상불가능하게 만든다. 그들이 주로 하는 일은 놀고 수다를 떨고 범죄를 저지르는 데 있는데, 이는 그들이 이야기 속에서 직접적으로 관계하지 못하고 어딘가 붕 떠있는 느낌을 느끼게 만든다. 이를테면 그들이 살인을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경찰이 쫓아온다거나 수배지가 붙지 않는다. 고전적 할리우드에서는 인물의 액션이 즉각적인 리액션을 불러오는데 비해, 이 영화의 반작용은 매우 미비하거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이로 인해 인물들은 영화 속 세계 안에 포함되거나 갇혀있다고 하기 보다는 부유하는 느낌을 주며, 세계 속에 속하지 못한 듯한 느낌을 준다. 이는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긴밀한 연관이 있는데, 애초에 고다르의 목적은 이야기를 전달하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독립적인 예술로써 영화란 어떤 본질을 가지고 있는지, 또한 인간이란 존재가 어떻게 실존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지에 대한 철학적인 물음이과 해답을 찾는 데 있었던 것이다. 이는 이 영화 봤을 때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이라 볼 수 있다.
가장 찾기 쉬운 특징이 몰개연성이라면, 두 번째로 찾을 수 있는 특징은 촬영기법이다. ‘시네마 베리테’라 불리는 영화작법인데, 카메라의 기록성을 최대한으로 끌어내 ‘현실 속에서 새로운 진실을 발견하자’라는 영화작법이다. 이 같은 작법은 러시아에서 시작했는데 ‘카메라 렌즈에 포착된 것이 사물의 본질’이라고 역설한 ‘키노 프라우다’운동을 프랑스 영화계에서 도입한 것으로, 장면의 배치를 비롯한 조명 음향 등의 인위적인 조작을 거부하고 있는 그대로 촬영하고 녹음해서 영화를 제작하는 것이다. 실제로 ‘미치광이 피에로’에서는 클로즈업이나 여러 컷 대신에 롱테이크가 자주 등장하며, 풀쇼트 이상의 쇼트로 촬영하여 관객들이 인물이 위치한 환경에 전 방위적인 풍경을 볼 수 있게 만들었다.
이 외에도 화려한 색채와 배경의 대비로 인위성이 강조하고, 주인공들은 카메라를 힐끔힐끔 쳐다보며, 때로는 대놓고 말을 걸기도 하고 월남전을 비롯한 케네디 암살과 할리우드의 자본주의 같은 정치적인 문제를 논하기도 한다. 인물이 객관적으로 보이게 만들고 관객들이 영화에 몰입하지 못하게 하려고 고다르는 여러 요소들을 고려했는데, 이를 통해 관객 스스로 생각하게 되고 지적인 유희를 가능하게 만든다. 고다르는 허구와 현실을 구분하는 것이 무의미하며, 인간의 삶 자체가 일단 시작 된 이상 의미를 상실하고 있으며 본질적으로 부조리한 것으로 표현하는 것 같다. ‘네 멋대로 해라’가 고전주의 할리우드 범죄물과 이탈리아 신사실주의를 자신만의 개성으로 녹여낸 작품이었다면 ‘미치광이 피에로’는 그 보다 더 해체주의가 강조되고 고다르가 자기 내면에 가지고 있는 의식을 여러 차원에서 표현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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