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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리가리 박사의 밀실 / 로베르트 비네뭔가 리뷰 2018. 11. 7. 01:37
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이후 독일은패전과 함께 베르사유 강화조약에서 요구하는 전쟁 보상 문제와 정치, 경제적 위기에 휩싸이게 된다. 실업 문제와, 빈곤, 절망, 불안이 계속되는 가운데 독일 영화계는 더 이상 군국주의적인 영화를 만들 필요성이 사라지게 되고, 영화산업이 통제받게 되자 사회나 정부를 비판하는 주제를 드러내지 못하고 개인의 불안심리를 파내는데 주목하게 된다. 또한 당시 예술가들에게는 오스트리아 생리학자 프로이트의 영향력이 지배적이었으므로 개인의 심리를 표출하려는 성향은 더욱 더 강해졌다. 이러한 가운데 탄생한 표현주의 영화는 객관적인 사실보다는 작가의 내면적이고 주관적인 감정(증오, 사랑, 불안, 공포 등)과 인간의 절박하고 역동적인 힘을 기법, 조명, 세트, 연기, 시나리오 등을 통해 표현하고자 했다.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은 독일 표현주의 영화의 모태라 할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몇 가지 두드러지는 특징이 있는데 모호한 줄거리, 배우들의 과장된 연기와 분장, 표현주의 화가들이 그린 세트, 강렬한 조명의 대비, 주관적이고 심리적인 카메라의 움직임, 공간적 요소에 담긴 의미가 그러하다.
줄거리의 경우 요약하자면 프란시스가 칼리가리 박사라는 연쇄 살인범을 떠올리는 이야기인데, 프란시스의 망상 속에서 칼리가리 박사는 18세기 대리 살인을 재현 시키고자 하는 사이코에 가깝다. 그는 자신의 몽유병자를 박람회 전시에 내놓고자 공무원을 살해하고 세자르를 사람들에게 소개시킨다. 23년간 잠들어 있었다는 세자르는 프란시스의 친구인 알란이 오늘 새벽에 죽을 거라고 예언하게 되고 알란은 정말로 살해당하게 된다. 프란시스는 친구 알란을 잃고 칼리가리 박사를 감시하기로 결심한다. 세자르는 프란시스의 약혼자인 제인을 납치하고, 프란시스는 칼리가리 박사를 쫓아 정신병원으로 가게 된다. 프란시스는 병원 의사들과 합심해서 박사를 병동에 가두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제인과 재회한 프란시스를 의사들이 가두게 되고, 칼리가리 박사는 프란시스를 환자라고 칭하며 치료할 방법을 알아냈다고 말한다. 이러한 이야기는 정확하게 줄거리를 간추리기가 모호하고, 회상은 어디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프란시스의 망상은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거짓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또한 받아들이기에 따라 결말은 두 가지가 되는데 첫 번째는 칼리가리 박사가 연쇄살인범이고 프란시스는 이 사실을 알리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칼리가리 박사가 사실은 정신병원 원장이며 모두 프란시스의 망상일 뿐이라는 것이다. 영화는 두 번째 결말에 힘을 주고 있으며, 두 가지 결말 중 무엇을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반전까지 주고 있다.
배우들의 연기와 분장의 경우에도 표현주의가 가지는 특징적인 부분들이 있다. 흑백영화임에도 세자르는 괴기스러운 느낌을 여지없이 보여준다. 얼굴을 창백하게 분장하고 눈가와 눈썹, 입가를 짙게 칠함으로써 세자르는 음산하고 보통 인간이 아니라는 느낌을 준다. 또한 칼리가리 박사도 역시 프란시스의 망상 속에서 검은색과 흰색이 대비되는 머리카락, 뺨이나 턱밑에 음영의 보다 극단적인 대비를 위한 분장은 그가 어딘가 강박적이고 비정상적이라는 느낌을 한눈에 알아 볼 수 있게 만든다. 연기도 역시 그러한데, 사실적인 연기라기보다는 미장센이나 촬영기법에 어울리는 패턴화 된 몸동작에 가깝다. 경련하는 것 같기도 하고 기이한 춤을 추는 것 같기도 하다. 이는 세트와 극단적인 조명대비로 인해 마치 예술형식의 연극을 보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또한 살해 장면의 경우에는 피사체의 연기를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그림자만을 보여주기도 하는데, 오늘날 공포영화에서 자주 사용되는 이 기법은 이 영화에서 처음으로 등장했다.
당대의 표현주의가 아닌 영화들과 확연한 차이점이 드러나는 것은 세트장인데, 어느 곳 하나 현실적인 구석을 찾아보기 힘들다. 표현주의 화가들이 참여한 세트장에는 원근감이 무시되어 있고 공간이 뒤틀려 있으며 실내인지 실외인지 구분하기 힘들고, 곡선이 직선으로 직선이 곡선으로 되어있어 이질감을 느끼게 만든다. 이는 세트장 자체가 캐릭터의 직접적인 표현을 대신해 내면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를테면 알란의 살해 소식을 들은 프란시스의 집이 그러하다. 정형화 된 것은 아무것도 없고, 지붕은 내려앉거나 휜 것처럼 보이고, 창문은 네모가 아니라 삼각형이거나 굴곡을 가지고 있으며, 방안의 명암이 현실의 것과는 차이가 있어 정확히 공간을 인지하기 힘들다. 그래서 방은 비좁고 불안하고 암울하게 보이며, 이는 정신병자인 프란시스의 내면을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카메라의 경우에는 주관적인 성향이 강한데, 피사체는 카메라 밖을 벗어나거나 잘려서는 안 된다는 통념을 깨고 인물들은 카메라 밖으로 나가기도 하고, 프레임 속에서 인물이 잠시 동안 사라지기도 한다. 또한 인물보다 배경이 더 가까이 잡히며, 더 중점적으로 잡히기도 한다. 이는 표현주의 연극에서 옮겨온 영향이 없지 않기에, 연극적 경향을 강하게 드러낸다고 볼 수도 있지만 ‘표현주의 영화’라는 것을 드러내기 위한 과정으로 이해 할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공간적 요소에 담긴 의미인데, 미술을 맡은 헤르만 바름과 발터 라이만, 발터 뢰리그는 곧 쓰러질 듯 추상화된 마을의 세부 풍경들을 그려냈는데 계단, 골목, 건물의 창문, 가로등, 서재, 세자르가 누워있는 관의 문 등에서 원근법을 무시하고 왜곡된 선을 강조해 비밀스럽고 비틀린 인간의 심리, 좁거나 구석으로 몰린 불안과 공포, 어딘가 내던져지거나 버려진 느낌을 형성했다. 이는 화가 ‘라이오넬 파이닝어’의 작품에 막대한 영향을 받은 것으로, 고립된 인간의 상징, ‘내팽겨쳐진 존재’의 표시 등의 비현실적인 분위기와 그 의미를 극대화시켰다.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은 모든 장면에 표현주의 회화의 이미지들을 차용하여 강렬한 시각적 이미지를 제공했으며 영화의 예술 양상에 대한 비평가들의 논의의 폭을 넓혔다. 또한 조명 기법, 무대장치, 연기, 시나리오 등은 기법 상의 혁신을 가져오면서 ‘칼리가리즘’으로 불리어 필름 누아르를 비롯한 누벨바그, 전위영화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또한 이 영화를 비롯해 스타트를 끊은 표현주의 영화는 나치즘을 피해 할리우드로 옮겨가면서 <프랑켄슈타인>(1931), <드라큘라>(1931) 등의 공포영화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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